[이동훈 칼럼] 외면한 환자들을 로스쿨 가서 보호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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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로스쿨 진학하겠다는 의학 계열 출신자 44% 폭증

의대 증원에 반대한 전공의들 이탈 여파인 듯…
환자 보호 목표를 둔 건지 진정성엔 의문

로스쿨은 물론 지원자 스스로 공익봉사
자질 검증 안 하면 전문직 도피에 불과할 것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준비해서 의료전문변호사 되려고 하는데 가능성 있을까요?

=(병원에) 복귀 안 하시나요?

-더 이상 노예생활 하고 싶지 않네요.

=로스쿨도 자퇴하실 건가요?

-아니요, 앞으로 의료소송은 계속 늘어날 거고 이쪽이 블루오션인 거 같아서요.

=의대 증원 이후에도 의사가 변호사보다 나을 거 같은데. 레지던트가 노동강도 높긴 하지만 평생 레지던트 하는 것도 아니고….

최근 로스쿨 관련 커뮤니티에서 어느 전공의가 로스쿨 진학을 놓고 대화하는 내용이다.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수련 병원을 이탈한 지 8개월째로 접어든 가운데 전직을 고려하는 이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이 중 위 전공의처럼 로스쿨 문을 두드리는 의학 전공자들이 크게 늘어나 관심을 모은다. 올해 법학적성시험(LEET)에 응시한 의학 계열 출신은 156명으로 지난해(108명)보다 44%나 증가했는데 2021년(10.5%), 2022년(21%), 지난해(17.3%)의 증가율을 훨씬 뛰어넘는다.

아직도 의료 소송에서 약자인 환자 편에 선 전문가가 크게 부족한 현실에서 의료인들이 법조계로 대거 진출하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로스쿨에 도전하는 의학 계열 출신이 폭증한 배경에는 전공의들이 수련 병원을 떠난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 이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의대 재학생 중 10% 정도가 로스쿨을 준비한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현장을 떠난 이들이 법조인으로서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는지 의문이 든다.

의사 출신 로스쿨 지원자는 LEET 점수나 학과성적이 낮아도 정성 평가에서 유리해 합격할 가능성이 어느 전공보다 크다. 로스쿨로서도 의료 지식이 풍부한 전문 법조인을 양성할 기회로 보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의사 면허증만으로 법조인 자격이 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의료인과 법조인이라는 두 전문직이 만나는 게 1+1=2와 같은 단순한 지식의 합산은 아니다. 특히 생명과 인권을 동시에 다루는 데는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윤리적 의식, 사회적 책임,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의사(醫師)에 다른 전문직에 붙이는 선비 사(士) 대신 스승 사(師)를 붙이는 데다, 의사 선생님이라고 존칭하는 것도 생명을 다루기 위해 희생하고 봉사는 데 대한 경의의 표시일 것이다. 간호원 명칭이 간호사(看護士)에서 간호사(看護師)로 점차 진화한 것도 같은 맥락일 터다.

내년도 대학입시부터 의대 정원이 대폭 확대되면서 의대생을 단순히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어, 인·적성 면접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다. 이는 최근 블랙리스트 사건과 의료 파업 중에 드러난 일부 의료인의 비상식적인 행동에서 예비 의대생의 자질과 인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결과다. 현재 40개 의과대학 중 인성 면접을 도입한 곳은 11곳에 불과한 현실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면접을 통해 진정한 의료인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 11곳에서 인성 면접을 치렀다면 대부분의 전공의는 무사히 통과했을 것이고 현재 입시를 준비하는 예비 의대생들도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입시 학원을 통해 의료인으로서의 가치관과 경험을 표현하는 방법까지 면접 연습을 철저히 거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의대 졸업식에서 통과의례로 치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선서를 대충 하거나 면접에서도 준비된 답변을 외우더라도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그 다짐들이 얼마나 내면화되어 가는가에 있다고 여겨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말이다.

최근 입시원서 접수가 마감된 25개 로스쿨에서도 이들이 그간 의료인으로서 그런 내면화 과정을 통해 법률 분야에서도 진정한 공익과 정의를 위해 활용할 자질을 키워왔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로스쿨에 도전하는 의사 출신 지원자들 스스로 진정성을 가지고 환자와 사회를 위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검증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선택은 단지 고소득을 노린 다른 전문직으로의 도피에 불과할 뿐 그 부담은 또 다시 환자들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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